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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갓집은 나가노의 산골짜기에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에 외갓집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산 속이라 산이랑 논밭 밖에는 없고, 사람도 별로 안 사는 마을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버스가 2번 왔다 가는 것 외에는 다른 교통수단도 없는 완전한 벽지였다.
평소라면 그런 시시한 곳에는 가지 않았겠지만, 그 해만큼은 친한 친구가 가족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나도 부모님에게 끌려 나서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심심했다.
가게에서 과자라도 사 먹으려고 해도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차를 타고 1시간은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나마도 아버지는 [모처럼 푹 쉬려고 왔으니까 너도 그냥 쉬어.]라고 하실 뿐이었다.
딱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옆 집에 나랑 동갑인 남자아이가 놀러 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 나이 또래는 처음 보는 사이라도 이상하게 쉽게 친해져서, 나와 그 아이, K는 금세 매일 같이 함께 놀게 되었다.
물론 그런 시골에서는 논다고 해봐야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근처를 쏘다니는 것뿐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1주일 정도 머물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마 3일째 되는 날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후 3시가 지나 점점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할 무렵.
나와 K는 지금까지 가본 적 없던 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로 올라갔지만, 어느새 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길에 들어서 있었다.
[저게 뭐지?]
K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비석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종종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도조신 1 같은 느낌의 50cm 정도 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렸는지 이끼가 잔뜩 껴 있었다.
나와 K는 자세히 보기 위해 손과 나뭇가지로 이끼와 진흙을 떼어냈다.
역시 도조신 같은 것이었지만, 뭐랄까, 조금 달랐다.
보통 도조신은 남녀 둘이 사이좋게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조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비석은 4명의 사람이 서 있는 채로 서로 얽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나와 K는 섬뜩해져서 [가자!]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근처는 어느덧 상당히 어슴푸레해져 있어서, 나는 한시바삐 돌아가고 싶었다.
[어, 뭔가 있어!]
내가 K의 손을 잡아당기며 걸어 나가려는 순간, K가 비석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오래된, 사방 4cm 정도 되는 크기의 나무 상자였다.
반쯤 지하에 묻힌 채, 반만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뭘까?]
나는 왠지 싫은 예감이 들었지만, K는 상관하지 않고 그 상자를 파냈다.
꺼낸 나무 상자는 이미 낡아서 여기저기 나무가 썩어 들어가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표면에는 무엇인지 모를 옷감 같은 것이 감겨 있었고, 거기에는 먹으로 무엇인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무슨 경 같은 어려운 한자가 잔뜩 쓰여 있었다.
[뭐가 들어있어!]
K는 상자의 좀먹은 부분으로 안을 들여다 보고,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안에서 나온 것은 벨벳 같은 검은색으로 윤이 나는 끈이 묶인 팔찌 같은 것이었다.
직경 10cm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팔찌 중간중간에는 5개의 검은 돌이 박혀 있었다.
돌은 완전히 둥근 모양으로, 거기에도 알 수 없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흙 속에서 꺼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도록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기분 나빴다.
[이거, 내가 찾았으니까 내 거야!]
K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팔찌를 손목에 차려했다.
[하지 마!]
나는 기분 나쁜 예감에 반쯤 울면서 말리려 했지만, K는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끼에엑!]
K가 팔찌를 끼는 순간, 기묘한 새의 울음소리가 산속에 메아리쳤다.
이미 주변은 깜깜했다.
나와 K는 기분이 나빠져 당황해서 집으로 뛰어갔다.
집 근처까지 와서 나와 K는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미 나는 그 팔찌에 관한 것은 잊고 있었다.
K의 집에서 전화가 온 것은 그날 밤늦게였다.
10시가 지나서도 깨어 있다가 어머니에게 [빨리 자라니까!]라고 혼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따로르르릉!]
매우 소란스럽게, 오래된 다이얼 전화가 울렸다.
[누구람, 이런 늦은 시간에...]
할아버지가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받으셨다.
전화를 건 것은 아무래도 K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멀리서 봐도 저녁에 반주로 한 잔 걸쳐서 붉게 물든 할아버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는 것이 보였다.
전화를 끊고 할아버지는 무서운 기세로 누워 있는 나에게 달려오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억지로 일으키고 [A야! 너, 오늘 어디 갔었던 게냐! 뒤에 갔던 거냐! 산에 올랐던 거냐!]
할아버지의 기세에 놀라면서도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온 할머니와 어머니도 이야기를 듣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할머니는 [아아아, 설마...]라고 망연자실하셨고, 어머니는 [미신이 아니었어...?]라고 중얼댔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의 심각한 모습에 차마 물어보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우선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K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집을 나서기 전에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지 놀란 아버지도 따라나서려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집에 남으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남았다.
K의 집에 가까이 가자, 지금까지 맡아본 적이 없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먼지가 많은 곳에서 나는 시큼한 것 같은 냄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고기 썩는 냄새였던 것 같다.
[야, K야! 정신 차려!]
안 쪽에서는 K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서슴없이 K의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와 나도 따라갔다.
거실에 들어서자 냄새는 한층 더 강해졌다.
거실에는 K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겨드랑이에 K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K는 의식이 없는 것인지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았다.
입은 반쯤 열린 채로 흰 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들 K의 오른팔에서 무엇인가를 떼어 내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그 팔찌였다.
하지만 아까 전 보았을 때와는 그 모습이 달랐다.
예쁜 끈은 사라지고, 돌 하나하나가 K의 팔에 박혀 있었다.
K의 손은 팔찌로부터 앞 쪽이 검게 변해 있었다.
그 검은 부분은 보고 있으면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아서, 팔찌에서 박힌 실이 K의 손 안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칸히모(かんひも)다!]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외치며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K네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K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피부 아래에서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곧 할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손에는 무려 부엌칼을 들고 계셨다.
[어쩔 생각이세요!?]
멈추려고 하는 K의 부모님을 뿌리치고, 할아버지는 K의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팔은 이제 포기해야 한다! 아직 머리까지는 가지 않았어!]
K의 할머니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칼을 K의 팔에 찔렀다!
비명을 지른 것은 K의 부모님 뿐이었다.
K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광경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K의 팔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무수한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상처에서 밖으로 넘쳐흘러 나왔다.
이제 손의 검은 것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잠시 뒤, 가까운 절에서 스님이 달려오셨다.
할아버지가 아까 전화했던 것은 이 절이었던 것 같다.
스님은 K를 방으로 옮기고 밤새 경을 읊었다.
나도 K를 위해 경을 읊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K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아침 일찍 부모님과 함께 돌아갔다.
도시의 큰 병원에 간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팔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 같았다.
[머리까지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할아버지는 계속 되뇌었다.
나는 [칸히모]라는 것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여쭤봤지만,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다만 [발피상(髪被喪)]이라고 쓰고 [칸히모]라고 읽는다는 것, 그 도조신은 [아쿠(阿苦)]라는 이름이라는 것만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지는 주술 같은 것일까?
그 이후로도 외갓집에는 몇 번 찾아갔지만, 아무리 물어봐도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것이 머리까지 갔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었을까.
나는 할아버지에게 '발피상'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좀처럼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단, 髮被喪이라고 쓰고 '칸히모'라고 읽는다는 것
(※ 역자 주: 역자의 판단 상, '칸히모'를 한자 음독인 '발 피상'으로 번역)
그리고 그 도소신은 '아쿠'라는 이름이라는 것만은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 투고하게 되고 다시 한번 진상이 궁 금해져서 지난 주말에 외갓집에 다녀왔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문헌과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사전을 찾아보며 열심히 알아내보려고 노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피상'은 주술의 한 종류인 듯하다. 그것도 별로 좋지 않은 계통
옛날, 아직 각 마을이 다른 마을과의 소통 없이 살아가던 시절 그때는 주로 마을 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흔히들 '피가 진해진다'라고 하듯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많았다.
지금처럼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 그런 아이들은'흉한 아이'라고 불리며 꺼 려졌다.
그리고 그 '흉한 아이'를 낳은 여자도 '흉한 어미'라고 불렸다.
그러나 '흉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분별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고
어느 정도 아이가 성장하고 나서 '흉한 아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 '흉한 모자 母子'는 마을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게다가 그 살해방식이라는 것이 '흉한 어미'가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죽이게 하고
그 '흉한 어미'또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흉한 어미'는 죽은 뒤에도 마을에 재앙을 가져온 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발피상'이라는 것이 생겼다
머리카락 발髮 씌울 피 被 잃을 상 喪 자를 써서 '발피상'이라고 하는 이것은
'머리카락'을 사용한 주술로 '좋지 않은 일'을 다른 이에게 '덮어씌운다'는 의미이다
흉한 어미의 머리카락 다발을 이용하고 흉한 아이의 뼈로 만든 구슬을 박은 주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웃마을 (이라고는 해도 거리상으로는 상당히 멀었다고 한다) 땅에 묻어
재앙을 다른 마을에 덮어 씌우려고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완장 형태였지만 목걸이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저주라는 것이 반드시 보복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들의 마을의 '발피상'이 묻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파내어 다시 원래 마을에 묻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도소신인 '아 쿠'였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온 '발피상'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위에 '아쿠'를 세워 봉인했다
'아쿠'는 본래 '카쿠'라고 불렸으며, 비석에 새겨진 사람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으로
마을에 다시 재앙이 돌아오는 것 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웃 마을로 향하는 길이 마침 뒷산에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발피상'이라는 풍습은 없어졌지만 이미 만들어진 발피상의 효력은 아직 남아 있었는지도 모 린다
그 후 할머니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K는 큰 병원에 가게 되었고
스님의 독경 때문인지 그때는 이미 머리카락은 한올도 남 아 있지 않았고
베인 팔은 안이 텅 빈 피부 가죽만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K는 평생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의사가 말하길 뇌에 자잘한 머리카락 굵기의 무수히 많은 구멍이 나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