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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교복을 입은 소하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제 미용실에서 다듬은 머리가 제법 소하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혹여나 머리가 손상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긴 머리카락을 빗었다. 머리가 깔끔해지자 그녀는 빗을 내려놓고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이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소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난 예쁘다, 난 멋있다.”라고 몇 번이고 빠르게 되뇌었다.
“됐다.”
이것은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별다른 의미 없는 긍정적인 주문. 소하는 주문을 다 외우고는 화장대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 옆에 놓여 있는 보라색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멨다.
“학교 갔다 올게!”
소하는 방문을 나서서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 소리에 부엌에서 설거지 중이던 엄마가 소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딸, 공부 열심히 하고, 수업 시간에 졸지 말고!”
“엉, 알았어.”
빨간 색채가 있는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그녀는 집을 나섰다.
등굣길에 항상 소하의 눈에 띄던 곳이 있었다. 도로와는 좀 떨어진 곳에서 쓸쓸한 기운을 퍼뜨리는 어느 한 폐가. 거의 3년쯤 전에 불에 탔던 단독 주택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소하는 그날의 시끄러웠던 현장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몰려와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큰 불에 휩싸여 검게 타고 있던 집, 그리고 그 불을 끄기 위해 몰려들었던 소방관들. 결국 화재로 인해서 그 집에 거주하고 있던 한 일가족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린 일가족은 소하의 친구였던 ‘이진하’의 가족이었다.
이진하는 내성적인 성격에 말주변이 없는 아이였다. 소하는 그런 그녀에게 공부하다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서 다가갔고, 결국엔 친해졌다.
그녀는 쉬는 시간에도 책을 펴고 공부할 만큼 학교 공부에 충실이었다. 그녀는 매번 시험에서 전교 5등 이내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게다가 외모도 준수해서 그녀를 좋아하던 남학생들도 넘쳐났었다. 소하의 친구들 중에 진하를 좋아하던 남자애가 3명이나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남자를 돌처럼 보는 듯했고, 남학생들의 고백과 접근을 단호하게 무시했었다. 그녀는 동성애자가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소하는 진하가 어떤 여학생 동성애자한테 고백을 받고, 따끔한 거절을 했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물론 이 사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했던 진하와의 고민 상담을 통해 소하만이 알고 있었다. 소하는 진하와 했던 얘기들을 떠올렸다. 진하가 필기한 노트를 도둑맞았다는 얘기, 어떤 남자애한텐 조금 흔들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신을 지켰다는 얘기 등등. 진하는 참 고민이 많은 애였다고 소하는 회상했다.
소하는 진하네 집, 현재는 폐가인 그곳에서 진하와 함께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대문 앞에 출입금지라고 쓰인 노란색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서 출입이 금해진 그곳. 아직 불타버린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곳.
‘진하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냉철해 보이는 게 멋있었는데…….’
언제나 소하는 폐가를 볼 적이면 이런 아쉬운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잠시 동안 폐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연고등학교, 2학년 1반. 1교시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학교는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시끄러워졌다. 언제나 여러 화제들로 말을 주고받던 학생들. 그러나 오늘 그들이 주고받는 화제는 거의 공통된 것이었다.
언제나 연예 소식이나 인상 깊은 뉴스는 학생들의 입을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틀 전에 일어났던 어느 살인 사건 소식은 그들의 입에 찰싹 달라붙었다.
“소하야, 어제 뉴스 봤어?”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고아연이 소하의 앞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소하의 옆자리에는 고데기로 웨이브 머리를 한 임수미가 어느새 와서 앉아 있었다.
“또 ‘그 살인 사건’ 터졌잖아.” 수미가 말했다.
“헐, 야, 진짜?” 소하가 놀라며 물었다.
“대박. 보고 완전 소름 돋았어.” 아연이 말했다.
그녀들 외에도 교내에 있는 학생들은 어제 뉴스에 나왔던 ‘그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하는 처음 TV에서 봤던 그 사건에 대한 보도를 떠올렸다.
‘그 살인 사건’이란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는’ 여태까지 소하가 사는 동네에서 두 번 발생했다. 사건 내용은 매우 엽기적이었다. 범인은 인적이 드문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을 갑자기 칼로 찌르고는 그 죽은 사람과 키스를 한 뒤, 그 입술을 잘랐다. 이는 CCTV를 통해 드러났는데,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했다.
그는 길고 커다란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었고, 머리엔 눈가와 입술 부분만 잘린 흰색 마스크, 빨간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얼굴과 체형이 가려져 있었지만, 옷을 보아하니 남자인 것 같다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게다가 그의 행동 중에 가장 피부를 에워싸는 듯한 공포감을 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가 CCTV를 보면서 웃으며 손가락을 펼치는 행위였다. 범인은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오른손에서 검지와 중지를 펼치며 브이(V) 표시를 했었다.
그런 살인자를 사람들은 ‘입술 살인마’라고 불렀다.
“어제 뉴스에서 봤거든. 범인이 막 마지막에 브이(V)하잖아. 근데 이번엔 손가락 세 개 펼쳤대.”
수미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소하는 깜짝 놀랐다.
“그럼 손가락 펼치는 게 죽인 사람 수인 거 아냐?”
“딱 봐도 그런 느낌이 팍 오잖아.” 수미가 말했다.
“헐, 처음에 손가락 두 개 펼쳤는데……. 그럼 처음 CCTV에 찍히기 전에 누가 죽었다는 거야?”
“응! 그렇게밖에 안 보이잖아. 와, 또 소름 돋았어.” 아연이 말했다.
“범인 진짜 사이코패스 같아. 경찰들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도대체 언제 잡힐는지……. 진심, 무서워서 야자를 못하겠어.”
수미가 한탄했다. 그러자 아연이 “네가 야자 한 날이 있었니?”라고 물었고, 수미는 “이제 공부 시작하려고 했거든!”이라고 반박했다.
저녁 6시 10분.
학교는 당분간 입술 살인마가 잡힐 때까지 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을 금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소하는 석식을 먹고 강제로 하교해야만 했다.
집에 도착한 소하는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신발장을 확인했다. 엄마 신발이 없었다. ‘엄마는 또 친구랑 수다 떨고 있겠지’라고 소하는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침대 옆에 던져 놓고 얼른 컴퓨터를 켰다. 어제 뉴스에 떴던 입술 살인마에 대한 소식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넷을 킨 뒤, 그녀는 검색창에 ‘입술 살인마’라고 입력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자 입술 살인마에 대한 인터넷 뉴스를 아무거나 클릭해서 확인했다. 그러자 CCTV에 찍혔던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 살인마가 오른손에서 검지와 중지와 약지를 펼쳐서 보여주고 있는 사진. 손가락으로 숫자 3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와, 무섭다…….”
피로 얼룩진 흰색 마스크, 빨간 중절모, 검은 바바리코트. 사진 속에 있는 살인마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양옆으로 찢어져 있는 걸 보니 소름이 돋았다.
‘알려진 바로는’ 입술 살인마가 저지른 살인은 여태까지 총 두 번 이루어졌다. 처음 살인은 일주일 전, 새벽에 일어났다. 입술 살인마는 새벽에 술 취한 어느 30대 직장인 여성을 살해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CCTV를 보며 두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이틀 전, 입술 살인마는 자정에 한 젊은 여성을 살해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CCTV를 보며 세 손가락을 펼쳤다.
이 사건이 더 무서운 건, 두 피해자 사이에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는 데 있었다. 마치 범인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면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죽이려는, 정말로 사이코패스인 사람 같았다.
‘손가락이 죽인 사람의 수를 나타내는 거라면…… 처음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했다는 건데, 왜 그 피해자에 대한 소식은 없는 거지? 혹시 그 뜻이 아닌 게 아닐까? 게다가 우리 동네에 CCTV가 차고 넘칠 리 없잖아. 근데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바로 CCTV를 봤어. 마치 CCTV가 있는 곳을 알고 일부러 그곳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왜 그런 걸까?’
소하는 기사를 읽으며 속으로 여러 질문을 던졌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소하는 컴퓨터를 끄더니 “모르겠다.”라고 길게 늘어지게 말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에 가로로 앉고는 뒤로 누웠다. 아니, 누우려다가 벽에 머리를 퍽 박아서 다시 일어났다. 그녀는 두 손으로 부딪힌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고통에 신음했다.
“아야……. 으씨, 아파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싱글용 침대에서 가로로 누우려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렇게 머리를 박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잠시 고통에 신음하던 소하는 각도를 좀 더 옆으로 틀어서 누웠다.
소하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일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노래방 가기로 했는데, 가도 되나? 저런 살인마가 우리 동네에 있는데……. 괜찮겠지? 살인은 늦은 시간에 벌어지는 것 같고, 애들이랑 놀아도 9시 안에는 집에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소하는 생각했다.
자신은 그 살인마와 엮일 일이 없을 거라고. 그 살인마는 분명히 금방 잡힐 거라고.
‘책이나 읽어야지.’
그녀는 다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 후, 침대 옆에 널브러진 가방에서 소설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침대에 똑바로 세로로 누웠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가슴을 푹신한 베개에 받친 채 책을 펼쳤다.
다음 날 아침.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두 어깨에 멘 소하는 “학교 갈게!”라고 말하면서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는 소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소하야, 조심해서 갔다 와! 요즘 우리 동네에 살인범이 있다고 하니까. 범인이 잡힐 때까지 일찍 다녀야 해.”
“알았어!”
소하도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집문 앞에서 그녀는 두 무릎을 굽혔다 펴기, 한쪽 팔을 옆으로 뻗고 반대 팔로 당겨주는 스트레칭을 했다. 이는 아침부터 몸의 활동을 촉진시키려는 그녀의 노력이었다.
스트레칭을 마친 그녀는 기운차게 등굣길에 올랐다.
길을 걷던 중, 진하가 살았던 집 앞으로 지나갈 때였다. 한 남학생이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여진 대문 앞에 서서 멍하니 폐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소하와 같은 세연고등학교 학생으로, 소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재욱. 소하와 동갑이며,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 재욱은 눈에 띄게 특이한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철학, 미스터리, 살인 사건 같은 것 등등. 소하는 예전에 그가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얼핏 본 적이 있었다. 그 내용 중에 기재된 어떤 사진은 잔인하거나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소하를 포함한 재욱을 아는 학생들은 거의 다 그가 특이한 애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저 애는 왜 저기서 폐가를 보고 있지? 소하의 마음속에 문득 호기심이 생겨났다. 평소에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재욱의 뒤로 가서 그의 왼쪽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재욱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하를 보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냐? 학교 안 가고.” 소하가 물었다.
“폐가 구경.”
“…….”
소하가 알기로, 재욱은 평소에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한테 말을 걸면 그는 묘하게 대화의 맥이 끊기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그도 친구랑 얘기할 때는 맥을 끊지 않는다. 특별히 여자한테만 이러는 것 같았다. 마치 그런 점은 진하와도 닮아 있었다.
소하는 단답형 대답에 잠시 당황스러워하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저기에 누가 있는 것 같아서.”
“…….”
그는 역시나 특이한 애였다. 지금 폐가에 누가 있을 리 없잖아. 소하는 그렇게 생각 속으로 말했다.
“누구?”
“몰라. 여자 같은데.”
재욱은 말을 얼버무렸다.
“얼핏 봤는데 사라져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재욱아, 너, 어제 공포 영화 봤지?”
“응? 어떻게 알았어?”
재욱은 깜짝 놀랐다. 계속 무서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소하가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아무래도 적중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거 아냐? 공포 영화 보면 막 인상 깊은 장면이 눈에 남고…… 그런 거 있잖아. 아마 그거 때문일걸. 잘못 본 거야. 여긴 아무도 안 살아.”
“그런가.”
“야, 그리고 이렇게 구경만 하다간 지각해.”
“아, 맞다. 지각하면 안 되지. 안녕, 먼저 갈게.”
“……?”
재욱은 지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하에게 인사를 한 뒤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학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소하는 힘차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쟤는 띨띨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웃기려고 저러는 걸까? 하나도 안 웃긴데…….’
소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학교를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재욱은 어느새 힘찬 발걸음으로 소하와의 간격을 넓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고, 다시 균형을 잡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어갔다. 그 모습이 웃겨서 소하는 피식거렸다.
세연고등학교의 2학년 1반 교실은 여느 때처럼 학생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남학생들은 입술 살인마라는 화제로 개그를 치며 재밌게 놀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친구들이나 가정사, 연예인에 대해서 혹은 입술 살인마에 대한 얘기들로 수다를 떨었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마다 매번 입술 살인마를 언급하시며 집에 일찍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어떤 선생님은 호신용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걸 권장했다.
그러나 모두 긴장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낮은 확률에 당첨될 리 없을 테니까.
오후 6시 30분. 소하가 자주 이용하는 단골 노래방에 소하를 포함한 세연고등학교의 여학생들이 7명 모였다. 교복 차림의 그녀들은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소하는 오늘따라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췄다. 아니, 난리를 피웠다. 그녀를 따라서 친구들도 노래에 맞춰 난리를 피웠다. 노래방엔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오후 8시, 그녀들은 헤어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소하는 집이 같은 방향인 수미와 함께 천천히 걸으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그 둘은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흐아아, 지친다…….”
소하는 힘없이 설렁설렁 걸었다. 노래방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것 같았다. 얼른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 작업은 굉장히 힘들고 벅찰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소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수미의 집에 들렀다가 돌아갈 적이면 이용하는 조용한 골목길. 소하는 가로등이 비추는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이라지만, 오늘따라 너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입술 살인마 때문에 이런 거겠지. 소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핸드폰을 보니 현재 시각은 오후 8시 26분이었다.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소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고는 얼른 고개를 앞으로 내려 차근차근 길을 걸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없이 걷는 모습을 뒤에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게 왠지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속 걸으면서 소하는 뒤에 있는 사람이 자기와 발걸음 속도를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분명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사람의 발걸음 속도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러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어느 한 이름이 떠올랐다.
‘입술 살인마’.
“…….”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뉴스에서 봤던 입술 살인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뒤에 있는 사람이 그 살인마인 건 아닐까? 소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가 다시 이건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밤길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누군가가 자기 뒤로 걸어가고 있다면 누구나 불안감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숨을 죽이고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경은 그녀의 발걸음을 재촉시켰다.
소하의 발걸음 속도가 빨라지자 뒤에 있던 사람도 더 빠른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안감이 더해졌다. 소하는 잠깐 곁눈질로 뒤에 있는 사람을 보려다가 말았다. 무서웠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는 얼른 이 불안감을 떨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
크고 검은 바바리코트에 이미 마른 피로 얼룩진 하얀 마스크, 빨간 중절모. 그리고…… 날카로운 식칼. 소하의 시선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뉴스에서 봤던 그 모습. 그리고 저 미소. 저 사람은…… 입술 살인마였다.
“꺄아아아악!!”
소하는 금방 상황을 인식하고 얼른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달리면서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봤다. 살인마는 무서운 기세로 소하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왜, 왜, 왜 그 살인마가 날 쫓고 있는 거야?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내가 걸린 거야? 뭐야? 뭐야? 왜!?’
소하는 속으로 오늘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 자신을 원망했다.
‘잡히면 죽어, 입술을 빼앗겨! 제발, 제발……, 제발!’
노래방에서 너무 힘을 뺀 탓이었을까. 다리에 힘이 금방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달리기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이러다간 죽는다. 잡혀서 죽는다! 소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달렸다. 어떻게든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저런 살인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 없어요?! 누가 좀 살려주세요!!”
계속 속도가 느려졌다. 다리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아예 눈을 감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모퉁이에 다다랐다. 그녀는 모퉁이를 돌아서 왼쪽 길로 가려고 했다. 그쪽이 인파가 많은 도로로 향하는 길이었으니까.
“앗!”
그러나 그녀는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라지며 쿵 넘어졌다. 세게 넘어지니 힘이 확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신음하며 공포에 몸을 떨었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나고 팔뚝에도 상처가 났지만 소하는 그런 상처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얼른 일어나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소하는 팔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무게 있는 무언가가 팍 내려앉았다. 그녀의 상체는 다시 강제적으로 바닥에 내려앉혀 졌다. 바닥에 가슴을 부딪힌 탓에 소하는 콜록콜록 헛기침을 했다.
“아…….”
살인마가 소하의 등을 발로 밟아 세게 억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 힘이 나지 않았다. 돌바닥에 오른쪽 뺨을 댄 채 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점점 소하를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가 커졌다. 입술 살인마가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소하의 심장이 더욱 쿵쾅쿵쾅 뛰었다. 이렇게 살인마한테 죽는 건가?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내가 죽어? 소하는 속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저주했다. 그때였다.
“……죽일 년.”
“……?”
“넌 죽일 년이야.”
소하는 자신의 위에 있는 입술 살인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하는 잠시 당황스러워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여자의 것이었기 때문에. 입술 살인마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건가? 게다가 죽일 년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소하의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다. 마치 이 살인마가 자길 아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절…… 알아요?” 소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알아. 씨발년아, 내가 니 죽이고 싶어서 맨날 환장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살인마의 목소리는 소하의 기억에 없었다. 게다가 소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화가 날 정도로 상처를 준 기억도 없었다. 혹시 이 사람, 어떤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잡힌 사람마다 원수로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들을 순식간에 떠올렸다가 소하는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일단 질문을 던졌다.
“대체…… 누구세요……?”
“씨발, 개 같은 년! 드디어 널 죽이게 됐구나, 이 더러운 계집년!”
살인마는 소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욕설을 내뱉었다. 소하는 이 여자와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죽어!”
살인마가 외치며 칼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하의 심장이 놀라 멎으려고 했다. 살려달라고 애원할 틈도, 슬퍼서 울 틈도 주지 않았다. 소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서 “꺄아악!!”하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모퉁이 쪽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저거!”
그 소리에 살인마는 소하를 찌르려던 행위를 멈추고 얼른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기 서!”
곧 그녀의 몸 옆으로 누군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도대체 누구지? 소하는 팔뚝으로 상체를 지탱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와서 한쪽 무릎을 굽힌 뒤 소하를 내려다보았다.
“학생, 괜찮아요? 일어설 수 있겠어요?”
그 남자는 경찰이었다! 소하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을 쏟았다. 죽음에서 벗어났다. 그 공포로부터 벗어났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었다. 소하는 거칠게 호흡하면서 엉엉 울었다.
“방금 제 동료가 범인을 쫓아갔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네요……. 이렇게 살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경찰의 목소리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덕분에 소하는 금방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녀는 훌쩍거리면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양다리를 오른쪽으로 빼고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았다.
“감사……합니다…….”
소하는 경찰을 보며 목멘 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면서 살인마가 도망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입술 살인마와 그를 쫓던 경찰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입술 살인마가 다른 길로 빠져서 그런 거라고 소하는 생각했다.
그런데 입술 살인마는 왜 그렇게 욕설을 내뱉었을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소하는 그런 의문을 품은 채 가만히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길을 응시했다.
소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큰방에서 “소하 왔니?”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하는 “응!”이라고 대답하고서 가방을 소파에 올려놓고는 얼른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세면대에 손을 대고 거울을 보았다. 아까 전 무서운 경험을 했던 소하의 얼굴은 제법 굳어 있었다. 소하는 아까 경찰한테서 구출을 받은 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소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갈 때까지 계속 앉아 있기로 했다. 경찰은 소하의 의사대로 그녀를 기다려주기로 하였다.
그들은 얘기를 나눴다. 경찰은 입술 살인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2인 1조 순찰 경찰들과 순찰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순찰 강화라고 해도 순찰 시간이 앞당겨지지 않았으면 소하는 살지 못했을 거란 말을 덧붙였다. 아울러 이 동네에 몇몇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또한, 경찰은 직업상 소하에게 사건에 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언제 입술 살인마를 봤느냐, 어디서 만났느냐 등등. 소하는 살인마한테 쫓기기 전 핸드폰 화면에 나타나는 시간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 8시 27분 정도였다고 대답했고,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뒤에서 누가 쫓아오고 있었는데 보니까 그게 입술 살인마였다고 대답했다. 또, 소하는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입술 살인마가 여자이고, 죽이기 전에 상스런 욕설을 많이 내뱉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중요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며 수첩에 정보들을 적어냈다. 그러자 곧 무전기로 연락이 왔는데, 범인을 놓쳤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하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소하는 경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도중 소하는 이번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기자들에게 알려지면 기자들이 기사를 쓸 테고, 기사를 보고 범인이 그 나름대로의 대처를 할 위험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범인에게 죽을 뻔한 소하에게 기자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소하는 친구에게도 안 되냐고 물었다. 경찰들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친구한테도 되도록이면 비밀로 해주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물론 집안에 있는 가족들한테는 말해도 괜찮으나 그들에게도 비밀을 엄수하게 해달라고 경찰은 청했다. 경찰들은 이번 일은 일단 입술 살인마를 잡은 뒤 밝힐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소하는 세면대에 있는 거울을 통해 오른쪽 팔뚝에 난 까진 상처를 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 이 사건에 개입된 걸까. 어쩌다 그 미친 살인마한테 죽을 뻔했을까.
“휴…….”
소하는 아까 전 죽을 뻔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수도꼭지를 틀고 흐르는 물에 세수했다. 물기가 가득한 얼굴로 다시 거울을 보았다. 일단 그녀는 산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실까 봐 소하는 입술 살인마한테 쫓겼던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상처는 넘어져서 생긴 거라고만 말하면 될 테고, 이제 입술 살인마가 잡히기 전까지 일찍 다니면 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소하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학교에 무릎과 팔뚝에 반창고를 붙이고 온 소하에게 친구들은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녀가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은 “왜 다쳤니”였다. 그녀는 모든 대답을 “넘어져서”라는 말로 통일했다.
오후 5시 50분. 하늘은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소하는 얼른 석식을 먹고 하교했다. 이런 시간에 입술 살인마를 만날 리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녀는 전기 충격기를 챙겨 온 상태였다. 전기 충격기는 가방의 왼쪽 주머니에 있었다. 어제처럼 뒤에서 입술 살인마가 쫓아온다면 가방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 대항할 생각이었다.
“응?”
폐가의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여진 대문 앞을 지날 때였다. 소하는 갑자기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폐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욱이가 어제 저기서 어떤 여자를 봤다고 했지……. 여자인 것 같다고 할 정도면 어느 정도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는 얘긴데……. 설마 그 말, 진짜인 게 아닐까?’
소하는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말이 진짜라면 저기에 있는 사람은……,’
어제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왔던 사람.
자신을 밟고 욕설을 내뱉었던 사람.
남자인 줄 알았으나 여자였던 사람.
‘입술 살인마…….’
소하는 선뜻 폐가로 들어가 자신이 추측한 내용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그 사람은 분명히 혼자 사는 사람일 거야. 가족이 있다면 복장 때문에 금방 눈치 채일 테니까. 그리고 어제 그 살인마가 경찰을 잘 따돌렸다는 건 여기 토박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토박이가 아니라면 애초에 도망갈 길을 모색했다거나……. 게다가 흰색 마스크도 준비한 것일 텐데, 그럼 이건 계획된 범행이란 거고…….’
물론 추측은 추측일 뿐,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로 폐가에 그 살인마가 살면 어떡하지? 아직 확증도 없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만약에 아니라면? 쓸데없는 인력 낭비잖아. 재욱이의 말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당사자도 확신이 없어 보였는데. 애초에 저렇게 엉망인 폐가에서 살 수 있나?’
여러 생각을 하면서 소하는 어느새 자신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응?”
소하의 집 대문 쪽에 한 남자가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머리카락이 짧고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핏 보아하니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는 가죽 재킷, 간편한 청바지 차림이었고, 과한 압박감이 느껴지게 하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소하는 잠시 멈추고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소하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소하를 보았다.
“혹시 노소하 학생입니까?” 남자가 소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 네. 근데 누구세요?”
“서울 송파경찰서 강력계 민호준 형삽니다.”
민호준이라는 남자는 경찰수첩을 보여준 뒤에 다시 그것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입술 살인마 건에 대해서 잠시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 네…….”
호준은 얼른 사건수첩과 펜을 꺼냈다.
“어제 입술 살인마한테 잡히셨을 때 심한 욕설을 들으셨다는데, 혹시 자신이 누군가에게 크게 상처를 준 적이 있습니까? 마음의 상처 같은 거 말입니다.”
어제 소하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소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없어요. 저도 그것 때문에 어제 밤새 고민해 봤는데……, 누구한테 크게 화가 될 만한 일을 한 것 같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어요.”
“정말입니까?”
“네. 게다가 그 살인마의 목소리도 어제 처음 들어봤어요.”
“흐음.”
호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냄새를 맡았을 때의 형사의 눈빛이란 저런 게 아닐까? 소하는 생각했다.
호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동네는 주변에 있는 번화가를 제외하면 CCTV가 없는 곳이 훨씬 많습니다. 뭐, 당연한 거지만요. 그런데 범인은 하필이면 CCTV가 드문 골목길 중에서도 CCTV가 있는 곳에서 사람을 칼로 찌르고 입술을 잘랐습니다. 특별한 말도 없이요. 그리고 곧바로 거기 있는 CCTV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뭔가를 표현했습니다. 즉, 범인은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소로 CCTV가 있는 곳을 택했다는 거죠. 그래서 범인은 이 동네 토박이이고, 이 범행은 계획된 것이며, 범인은 자신의 존재를 이런 식으로 알리려는 사이코패스라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호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제 학생이 도망쳤던 그 골목길 근방에는 CCTV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전에 죽였던 두 피해자와는 다르게 학생에게만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아!”
그제야 소하는 깨달았다. 입술 살인마는 잡힌 사람 모두를 원수로 보는 게 아니라 오직 소하만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쯤이면 학생도 눈치챘을 겁니다. 학생은 입술 살인마한테 언제인가 크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는 걸요.”
“전 정말 몰라요……. 정말로 누구한테 크게 상처를 준 기억이 없어요!”
“흐음.”
호준의 눈빛이 무서웠다. 하지만 소하는 결백했다. 소하는 입술 살인마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호준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뭐, 입술 살인마가 많이 정신이 나가서 자신이 여태까지 죽이고 싶어 했던 원수와 학생이 겹쳐 보여서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 뭘 어떻게 손대볼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아무튼 학생이 저희 경찰에게 준 정보는 매우 특별합니다. 학생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밖에 판단되지 않으니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준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소하를 제치고 떠나갔다.
“…….”
소하는 잠시 멍하니 걸어가고 있는 호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누군가에게 크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는지를. 물론 그랬다면 진작 기억해 냈으리라.
도대체 입술 살인마, 그녀는 누굴까? 소하는 그런 의문을 품은 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
현관에 편지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현관문 아래에 있는 틈으로 집어넣어서 집안에 들여보낸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뭘까? 소하는 허리를 굽혀 그 편지 봉투를 주운 뒤 봉투에 써진 글씨를 확인했다.
“……?!”
To. 노소하.
From. ‘이진하’.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진하는 분명히 죽었는데……. 소하는 얼른 현관문을 닫고 거실을 거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켜고 침대에 앉아 편지 봉투를 찢어 안에 있는 편지지를 확인했다.
To. 노소하
소하야, 이 편지 보고 많이 놀랐을 거야... 이것부터 말할게. 난 사실 살아 있어.
우리 아빠가 경찰이었던 거 알지? 아무래도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나 봐...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쪽 사람들이 우리 집을 불태운 것 같아...
난 다행히 구출됐는데, 어떤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와서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다면서... 나보고 죽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면 목숨은 살려준다길래... 계속 떠돌면서 살고 있었어. 그 사람들이 계속 날 감시하고 있어서 난 이제 바깥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 못해...
소하야, 나, 저번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 여기로 다시 돌아온 거야.
너밖에 떠오르지 않더라. 혹시 나 좀 며칠 재워줄 수 있니? 친구로서 부탁할게. 나 좀 도와줘...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난 지금 내가 살았던 집에 있어. 그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여기에 숨어들었어. 소하야, 만약에 정말로 내 부탁 들어줄 수 있다면, 꼭 여기 와서 날 데려가줘. 언제든 기다리고 있을게.
From. 이진하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글의 내용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편지가 진하의 편지라고 신빙성을 주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편지의 필체였다. 진하는 학교 공부에 충실이었던 만큼 노트 필기를 열심히 했었다. 그 노트를 보면서 소하는 진하의 필체가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소하는 그녀의 필체를 유심히 보면서 자주 모방 연습을 하곤 했다. 그래서 진하의 필체만큼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었다. 내용만으로는 믿기 힘들었겠지만, 필체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소하는 이 편지를 진하가 쓴 것이라는 데에 믿음이 갔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혹시 어제 재욱이 폐가에서 봤다던 여자……, 진하가 아니었을까? 이 편지가 우리 집에 온 것도 그렇고, 이 필체도 그렇고…….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소하는 확신하기 시작했다. 진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소하는 시계를 봤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10분이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얼른 진하를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교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오후 6시 15분. 소하는 진하가 살았던 집, 지금은 폐가인 그곳의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연홍빛과 주황빛으로 물들여진 저녁 하늘 아래에서도 그 집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소하는 출입금지 테이프를 넘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 폐가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
문은 불에 탔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소하는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을 당기자 끼이이익, 소리가 났다. 그리고 폐가의 내부가 소하의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탓에 열린 문틈으로 빛이 폐가 내부로 들어왔다. 벽지와 가구 등 폐가 내부는 온통 시꺼멓게 물들여져 있었다. 전부 불탔던 흔적 그대로였다. 소하는 신발을 신은 채 폐가 내부에 들어섰다.
“진하야.”
소하가 작은 목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소하는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며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진하야.”
폐가 내부에서 방 세 곳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 저 방 세 곳 중 한 곳에 진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소하는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조용히 방 세 곳 중 화장실 옆에 있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중학생 때 한 번 와본 적이 있었기에 소하는 이곳 구조를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향하는 곳은 예전에 진하의 방으로 쓰였던 곳이었다.
끼이이이익. 소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진하야.”
소하는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불에 탄 침대, 불에 탄 옷장, 불에 탄 책상 등이 눈에 띄었다. 온통 불에 탄 흔적. 진하는 이 방에 없었다.
“없나…….”
소하는 독백하며 방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였다.
“소하……?”
“……!”
힘없고 가냘픈 목소리가 진하의 방 쪽에서 들려왔다! 작은 소리였지만, 주변 환경이 매우 조용한 탓에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소하는 깜짝 놀라 얼른 방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며 진하를 불렀다.
“진하야?”
“여기…….”
작은 목소리가 침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소하는 곧장 침대 옆으로 갔다.
“진하야, 왜 침대 아래에 있어? 어서 나와.”
소하는 침대 밑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고 해도 침대 밑을 보고 진하를 마주하게 된다면 분명히 놀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깐 침묵이 흘렀다. 소하는 의아해하며 다시 진하를 불렀다.
“이진하……?”
그때, 침대 밑에서 식칼을 든 손이 빠져나왔다!
“꺄악!!”
그 손이 식칼을 계속 휘두르자 소하는 그만 오른쪽 발목을 약간 베이고 말았다. 소하는 놀라면서 뒤로 자빠지며 책상에 뒷머리를 쾅 박았다. 뒷머리와 발목에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소하는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책상에 기댄 채 뒷머리를 잡고 신음했다.
“아아아…….”
아팠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소리가 안 나왔다. 강도가 더 높았으면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발목 쪽에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베고 간 느낌은 참으로 끔찍했다.
“아파…….”
하얀 양말이 붉은 피로 물들였다. 발목이 자꾸만 따끔거렸다. 그녀는 정신없이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야.”
“……?”
앞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소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검은 바바리코트에 피로 물들여진 하얀 마스크, 빨간 중절모……. 그녀는 입술 살인마였다! 왜 이 여자가 여기 있는 거지? 진하는? 진하는 어디에 있는 거야?
곧 입술 살인마가 쪼그려 앉아 소하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소리 지르지 마. 죽일 거야. 발버둥 치지도 마. 죽일 거야.”
“…….”
하얀 마스크 뒤에 어떤 표정을 감추고 있을까. 입술을 내보이고 있었지만 소하는 그녀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일단 소하는 살인마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는 왼손에 쇠방망이를 쥐고 있었다.
……쇠방망이?
“근데 뭘 하든 난 널 죽일 거야. 넌 여기서 죽을 거야.”
갑자기 살인마는 두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왼손에 쥐고 있던 쇠방망이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소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반사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머리를 노리고 있던 쇠방망이는 그녀의 팔뚝을 강하게 가격했다.
“끄악!”
소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곧 살인마는 방망이로 소하의 머리 오른쪽 부분을 가격했다. 그 타격에 소하의 상체는 왼쪽으로 넘어졌다. 이어서 살인마는 소하의 오른쪽 팔과 허리, 허벅지 부분을 연속으로 때렸다.
한 8번 정도 맞았을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통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온몸에 멍이 든 듯한 이 기분. 아팠다. 정말로 아팠다. 소하는 몸을 덜덜 떨면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대로 뭔가를 한다면 그 강도가 더 심해질 것 같았으니까.
“노소하, 계집년.”
“……!”
살인마가 소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소리에 소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 교복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봐서? 아니, 아까 이 살인마는 침대에 숨어 있었을 때도 소하를 불렀다. 마치 진하로서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진하……, 진하……? 설마?
“혹시 너……, 진하니?”
소하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하는 어떻게든 힘을 주고 살인마를 올려다보았다. 저 흰색 마스크, 저 마스크 안에 들어 있는 건 진하의 얼굴이 아닐까? 그런데 살인마가 막 웃어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 웃어댔다.
“왜…… 웃어……?”
“이 병신아! 진하는 죽었잖아! 정말 그걸 믿었냐? 에라, 병신, 병신!”
살인마는 계속 웃어댔다.
소하의 머릿속이 혼잡스러워졌다. 그럼 대체 누구야? 대체 넌 누구야?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것일까, 살인마는 갑자기 뒤로 가더니 침대에 앉아 소하를 내려다보았다. 소하는 덜덜 떨리는 두 손에 최대한 힘을 주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책상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친 오른쪽 팔을 꽉 잡고 살인마를 쳐다봤다.
“아윽…….”
전신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소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견뎌냈다. 곧 그녀의 뺨을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건 분명히 머리에서 나오는 피겠지. 소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최악이었다.
소하는 이를 악 물고서 눈을 떴다.
“그럼…… 넌…… 누구야……?”
소하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살인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빨간 중절모를 벗어서 침대 시트에 내려놓고 머리를 온통 감고 있던 하얀 마스크를 벗어냈다. 그러자 헝클어진 단발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를 가진 낯선 여학생의 얼굴이 드러났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누구였지, 얘는? 소하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왜 기억나지 않는 걸까?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인물인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넌 날 모를 거야.”
살인마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난 널 지켜보기만 했거든.”
“……?”
“난 진하를 좋아했어.”
“……!”
그 말을 듣는 순간, 소하의 머릿속에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진하와 고민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여자. 진하한테 고백했다던 그 여자. 분명했다. 이 살인마는 진하한테 고백했던 그 동성애자였다!
“진하는 예쁘고 매력적인 애야. 남학생들한테 몇 번이고 고백을 받았는데 전부 차버렸잖아. 그래서 난 진하가 나 같은 애라고 생각했어. 결국 고백했어. 그런데 진하는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어. 근데 난 진하가 너무 좋았거든? 그래서 강제로 키스했어. 그때 진하가 날 밀쳐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살인마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말을 이었다.
“‘미친년’…….”
“…….”
눈을 크게 뜨고, 지나칠 정도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무서웠다. 소하는 고통을 참으며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편하게 얘기하고 있는 그녀를 건들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살인마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있지, 키스한 느낌이…… 정말 너무 좋았어. 부드럽고…… 촉촉하고…… 너무 좋은 거야, 그게. 그 입술을 빼앗고 싶었어. 차이긴 했지만, 그래도 난 진하가 좋았고, 진하가 가진 그 입술이 좋았어.”
살인마는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그리고 무서운 눈빛으로 소하를 노려보았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반응. 소하는 무서워했다.
“그런데 진하의 곁엔 항상 네가 있었어. 그게 너무 싫더라? 네가 너무 싫고 질투 나고……. 매일매일 널 지켜보면서 널 때려죽이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다.”
그래서였나. 어제 그렇게 욕설을 내뱉었던 이유가……. 소하는 생각 속으로 말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진하한테도 화가 났어. 고백을 받아주지 못하면 친하게라도 지내주지, 왜 날 받아주지 않은 걸까? 왜 노소하, 너 같은 년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왜 난 안 되는 걸까? 너무 화가 나서 새벽에 여길 찾아왔어.”
살인마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라는 건 이 집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불 질렀어. 걔네 가족이 다 자고 있을 때.”
“…….”
이 집이 불타고 진하의 가족이 모두 죽은 이유가 이 살인마 때문이었던 건가. 갑자기 소하의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진하가 이런 이유로, 이런 사이코한테 걸려서, 그렇게 죽은 거라니…….
“넌…… 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소하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억양을 높여서 말했다. 그녀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살인마는 다시 미소를 짓고 방망이를 시트 위에 두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하의 앞에 서서 쪼그려 앉아 소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곧 살인마가 아주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응.”
소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이딴 사이코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가 치솟았다. 그녀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런데 나도 좀 감정이 상했었어. 진하가 죽으니까 마음이 공허해지는 거야. 그렇게 방황했어, 3년 간. 그러다가 다시 키스했던 그 감촉이 떠올랐어. 진하가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키스해보고 싶었어. 근데 나한테 딱 맞는 아주 재밌고 간단한 방법이 있더라.”
살인마가 검은 코트에서 무언가를 꺼내 소하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본 순간 소하의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건 잘린 사람의 입술이었기에. 분명히 그 ‘아주 재밌고 간단한 방법’이란 자신이 저지른 연쇄살인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내가 손가락 펼치는 거 있지? 그거 내가 키스한 횟수야. 그 짜릿하고 설레는 느낌이 좋단 말이야. 사람들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난 키스에 환장한 여자란 걸.”
“…….”
그렇구나. 역시나 죽인 사람의 숫자가 아니었던 건가……. 소하는 생각했다.
“난 사람의 신체 기관 중에서 입술이 가장 좋아. 입술과 입술을 마주할 때 그 느낌, 정말…… 말로 표현 못하겠어. 아, 물론 네 입술도 가져갈 거야. 근데 난 네가 너무 싫어. 너무, 미칠 정도로 싫어. 질투 나게 했으니까. 그래서 넌 입술부터 가져가고 천천히 죽일 거야. 아, 너무 짜릿하다……! 널 여기서 괴롭힐 수 있게 됐으니까.”
“…….”
살인마가 제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가고는 다시 침대에 풀썩, 앉았다. 아무래도 살인마는 긴장이 많이 풀려 있는 것 같았다. 소하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편지를 보낸 건…… 너야……?” 소하가 물었다.
“당연하지. 난 진하 글씨체를 따라서 연습했거든.”
소하는 진하가 필기 노트가 사라졌다고 고충을 털어놨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 그 범인은 이 여자였겠지.
“넌 내 집을 알고 있었어……. 날 죽이려고 했다면…… 왜 우리 집에서 기다리지 않은 거야……?”
“널 괴롭히면서 천천히 죽이고 싶었어. 그러려면 이런 사람의 발길이 없는 장소가 필요하잖아? 그리고 어제는 충동적으로 널 죽일 뻔했어. 내가 자주정신이 나 가거든.”
살인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맞다. 널 너무 많이 쉬게 한 것 같아. 일단 네 입술을 잘라야겠다.”
“뭐?”
살인마의 말을 듣는 순간, 소하의 전신에 소름이 확 돋았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살인마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에 식칼을 든 채 살인마가 소하의 앞에 섰다. 곧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소하를 감쌌다. 이런 살인마를 만났고, 친구를 잃었기에. 그리고 지금 그 살인마가 자신도 죽이려고 하기에. 너무 분했다. 이런 미치광이를 주변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몸서리칠 만큼 소하를 화나게 만들었다.
살인마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단 한순간에 왼손으로 소하의 목을 꽉 쥐어잡았다.
“키케…….”
숨이 막혔다.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너무 괴로웠다.
곧 살인마가 오른손에 든 식칼을 소하의 입가에 갖다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무서워 소하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제발……, 하지…… 마……."
입술을 잃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지? 어떤 느낌일까? 미칠 정도로 무서웠다.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입술을 잃은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노소하, 넌 나한테 죽일 년이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야. 날 고통스럽게 했기에 이렇게 벌을 받는 거야. 참아, 어차피 넌 죽을 거니까.”
왜 편지지를 좀 더 의심해보지 않았지? 왜 이런 곳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거지? 왜 이런 사이코한테 죽어야 하지? 왜? 왜? 그저 평범하게 살았을 뿐인데, 그저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키케…….”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이대로 입술을 잃고, 또 어떤 심한 고통을 당하다 죽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엄마가 떠올랐다. 아빠가 떠올랐다. 부모님을 보고 싶었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소하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며 계속 눈물을 쏟았다.
그때였다. 거실 쪽에서 쨍그랑! 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살인마는 소하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러자 소하는 기침을 해대며 거칠게 호흡했다.
살인마는 조용히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거실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숨을 내쉴 수 있게 된 소하를 보며 식칼의 손잡이로 소하의 머리를 세게 쳤다. 소하는 “꺄악!”하고 짧은 비명과 함께 다시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조용히 있어.”
살인마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실에 전구 유리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저게 지금 깨진 거지? 살인마는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때, 현관문이 쾅, 하고 부서지며 집안 쪽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소하에게 기적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이다!!”
형사들이 권총을 들고 순식간에 집안으로 들어왔다! 소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떨리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살인마는 깜짝 놀라고는 얼른 방 안으로 도망쳤다. 형사들도 일제히 살인마를 쫓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살인마는 어느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왼손으로 소하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소하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오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오면 이 년 죽일 거야!!”
형사들은 섣부른 행동을 하면 인질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살인마는 형사들을 보면서 계속 소리쳤다. 소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있었다.
‘어?’
문득, 소하의 눈에 머리카락이 짧은 형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소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던 강력계 형사, 민호준이었다. 호준은 소하에게 눈빛을 보냈다. 어째선지 소하는 저 눈빛이 뭘 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살인마는 지금 형사들한테 온 정신이 팔려 있어. 형사들은 틈을 노리고 있고……. 살 수 있어! 반드시 살 수 있어!’
소하는 형사들을 믿고 마지막 용기를 내어 발버둥을 치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들이대고 있는 칼을 쥔 살인마의 오른손을 꽉 깨물었다.
“꺄악!”
살인마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호준이 살인마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을 발로 세게 밀어 찼다. 그러자 살인마는 칼을 놓치고 뒤로 고꾸라지며 넘어졌다. 때를 놓칠 세라 형사들은 얼른 살인마에게 달려들었다. 호준은 살인마를 제압하고서 그녀의 몸을 뒤로 돌리게 했다. 그리고 두 무릎으로 살인마의 양팔을 누르고 왼손으로 살인마의 왼팔을 잡고 오른손으로 살인마의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눌렀다. 곧 두 형사가 와서 그녀의 두 팔을 잡자 호준은 물러나고, 형사들은 그녀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후아…….”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소하는 다시 책상에 등을 기대고는 다친 오른팔을 잡은 채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살인마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죽일 거야! 노소하!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이거 놔!! 놓으라고!!”
살인마는 몇 번이고 저항했다. 그러나 학생 나이에 특별한 운동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여자가 형사들을 힘으로 당해낼 리 없었다.
“노소하!!!”
그녀는 소하의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목청이 터져라 불러댔다.
입술 살인마는 연행되었다. 그녀는 연행되기 전까지도 소하를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소하는 담요를 덮은 채 폐가의 대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주변에 있는 경찰차들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술을 잃을 뻔했던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눈물은 뚝 그쳐 있었다.
“괜찮아요, 학생?”
“아.”
호준이 소하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소하는 호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몸은 어때요?”
“참을 만해요. 움직이면 좀 아프지만요…….” 소하는 붕대가 감긴 오른쪽 발목을 보며 대답했다.
“이제 곧 구급차가 올 겁니다. 골절이 된 것 같으니까 당분간 병원에서 좀 쉬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만약에 입술 살인마가 힘센 남자였다면 그저 이런 골절만으로 끝나지 않았겠지. 소하는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파란빛으로 물들여지기 시작했다.
“저기요.” 소하가 입을 열었다.
“아, 예.” 호준이 소하를 보았다.
“제가 여기에서 죽을 뻔했던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입술 살인마가 학생한테만 특별한 반응을 보였으니까요. 그 살인마가 다시 학생에게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팀원들은 어제와 오늘 잠복을 하면서 학생을 감시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이 집에 들어간 것 보고 수상쩍어서 동료들과 이 집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감시한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서였으니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아……, 괜찮아요. 기분 안 나빠요.”
“다행이군요.”
“근데 왜 바로 안 들어오셨던 거예요?”
“일종의 형사의 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여러 변수 때문이었습니다. 학생이 직접 범인한테 죽으러 갈 리 없을 테고, 폐가에 들어간 건 매우 수상하고…….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던 겁니다. 그리고 안에서 전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 숫자를 세고 동료들과 안으로 쳐 들어갔던 거죠.”
“아아.”
전구가 깨졌다……. 왜 하필 그때 천장에 있던 전구가 떨어져서 깨진 걸까? 왠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학생은 왜 이곳에 왔던 거죠?”
“…….”
소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얘기는 왠지 꺼내기 싫었다. 설령 꺼낸다고 해도 지금은 싫었다. 몸이 지쳐 있기 때문인지, 그것이 끔찍한 기억이라서 아직은 다시 한번 떠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많이 피곤해요…….”
“……알겠습니다.”
호준은 예의가 바르고 이해심이 깊은 사람 같았다. 곧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도착했다. 호준은 “병원에서 편히 쉬십시오.” 하고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들 사이로 떠났다. 소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구름이 제법 많았다. 소하는 다시 한번 살아있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입술 살인마가 잡힌 지 3주가 흘렀다. 입술 살인마의 신상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동시에 소하가 겪었던 일들 또한 모두 뉴스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소하는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소하의 부모는 소하가 겪은 악몽 같은 일 때문에 소하를 매우 걱정스러워했다. 소하는 엄마, 아빠한테서 “살아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소하의 친구들은 병문안을 와서 소하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소하는 친구들 덕분에 그때의 악몽 같았던 일을 잊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
소하가 겪었던 사건은 교내에 소문으로 퍼졌다. 소하가 붕대를 감은 채 등교하자 정말 많은 학생들이 소하를 보려고 2학년 1반으로 몰려들었다. 학교 아이들, 선생님들은 소하에게 괜찮냐는 말을 꼭 한 번씩 건넸다. 소하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그렇다고 대답을 통일했다.
소하는 호준을 통해서 입술 살인마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입술 살인마는 감방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밤중에 동맥을 긋고 자살했다고 했다. 그녀의 팔에는 ‘노소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소하의 마음속에 나타났던 감정은 분노나 공포보다는 연민이었다.
그리고 경찰 조사 결과, 입술 살인마의 이름이 밝혀졌다. 그녀의 이름은 ‘강소빈’. 예상대로 소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 그녀의 아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마약을 한 혐의로 투옥되어 있다고 호준이 알려줬다. 게다가 호준은 소빈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녀의 엄마가 남겨 놓은 마약을 했던 거겠지. 소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주 창밖을 보며 강소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입술 살인마. 소하는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소하는 화장대 앞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빗었다. 붕대를 감은 오른팔에서 아직 따끔거리는 감이 있었지만 나름 참을 만했다.
머리가 깔끔해지자 그녀는 빗을 내려놓고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이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소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난 예쁘다, 난 멋있다.”라고 몇 번이고 빠르게 되뇌었다.
“후우.”
소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라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방을 나섰다.
“학교 갔다 올게!”
소하가 큰 목소리로 말하자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가 소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딸, 조심히 다녀와! 차 조심하고!”
“응이, 알았어!”
소하는 현관에서 빨간 색채가 있는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평소 때처럼 스트레칭을 마치고 대문을 나서서 등굣길에 올랐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좋다고 느끼며 그녀는 힘차게 학교로 걸어갔다. 그렇게 길을 가던 중, 소하는 다시 한번 진하가 살았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잠시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 달 전에 입술 살인마한테 죽을 뻔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생겨난 걸까. 소하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묘한 감정에 마음을 맡기고 폐가를 바라보았다.
“응?”
폐가의 현관문 앞에 어떤 흰옷을 입은 여자애가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앤 누구지? 소하는 여자애를 자세히 보려고 했다. 여자애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얼굴이 정말 예뻤다. 소하는 그 낯익은 예쁜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곧 여자애는 소하를 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자애가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소하는 그 모습을 보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자애의 모습은 소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풋.”
그랬구나. 너였구나.
소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폐가 쪽을 정면으로 몸을 돌렸다.
“안녕.”
소하는 오른손을 살며시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미소를 띤 채 폐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학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