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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廃村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야
도쿄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내내 외갓집에서 보냈어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매번 나 혼자 가야 했지
외조부모님께서는 첫 손자였던 나를 항상 웃는 얼굴로 환영해 주시곤 했어
외갓집은 산간의 작은 마을이었어
마을 북단의 산을 깎아 산 바로밑에 국도가 지나고 그 도로변에 상점이 몇 채 늘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외갓집이 있었어
산을 등지면 작은 평지가 있었고 가운데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강을 건너서 몇 분 걸어가면 또 산이 있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와 강을 끼고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고개가 하나 있는데 그 고개 너머까지 마을이 이어져 있어
이 고개는 이름 자체도 왠지 으스스하기도 해서 어른들이 옛날이야기로 고개에 얽힌 괴담 따위를 종종 들려주시곤 했었어
이런 완전 깡촌구석 마을에 주민이라곤 다 합쳐도 50여 명밖에 없었으니까
함께 어울릴만한 어린아이는 5~6명이 고작이었지
그중 가장 친했던 게 아이들 중에선 나이가 제일 많았던 A(중1) 형이랑 A동생 B(초6) 형
그리고 그중에 유일하게 나보다 어렸던 생선가게 아들 C(초4)
강에서 수영을 하거나 투구풍뎅이를 잡으러 다니는 등
도쿄의 콘그리트 더미 속에서 살던 내게 게임기가 없이도 즐겁고 재밌는 시골 생활은 신선한 충격이었지
천국이 따로 없었어
초등학교 5학년의 여름방학
난 예년처럼 신간센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6~7시간에 걸쳐서 외갓집으로 향했어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지
마을 어른들이 가선 안된다고 하시던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초밥집에서 담력시험도 했어
땡볕이 내리쬐는 대낮이었는데도 울창한 산속인 데다 북향이었던 탓에 어두컴컴한 게 제법 무서웠었다고
거기 말고도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던 장소가 또 한 군데 있었거든?
마을에서 국도를 따라 고개 쪽으로 가면 도로변에 제재소랑 묘지가 있었는데 그 묘지 끝으로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는 거야
지금은 도로 도폭도 확장되고 터널도 몇 개나 더 뚫렸다고 하는 것 같지만
당시에는 마을에서 몇 킬로나 떨어져 있는 고개까지 도폭도 좁고 교통량도 많아서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어
사실 부모님과 함께 차로 왔을 때 사고 날 뻔한 적도 있긴 했었어
벼랑에 달라붙어있는 좁은 도로에서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던 대형트럭 때문에 죽을 뻔했었던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하는 둥 저마다 허세를 부리며 수다를 떨던 중
B형이 히쭉히쭉 거리면서 얘기하기 시작했어
B : 고개너머에 묘지 끝에 철조망이 쳐진 길 있잖아? 글루 가면 엄~청나게 무서운 집이 있다?
A : 집? 철조망 안쪽으로 들어가 본 적 있는데 그런 거 없었거든?
C : 우와 A형도 간 적 있어? 거긴 절대로 가면 안 된다던데~
A : 응. 비밀이다~!
아무래도 정말로 가면 안 되는 곳은 철조망이 있는 그 길인 것 같다는 감이 왔지
A : 그 길로 가면 강이 나와서 길 끊기거든?
B : 그게 있지 옛날에 거기에 다리가 있었다나 봐
그런데 그게 우리가 태어났을 때쯤에 홍수로 떠내려 갔대
근데 그 길 말고 강 앞쪽에 비스듬하게 들어가는 오래된 샛길이 있는 것 같아
거기엔 낡은 다리가 아직 남아 있다 이 말이야
그 길은 돌멩이 투성이고 잡초랑 나무가 무성해서 길도 다리도 잘 보이지 않는 거래
A : 누구한테 들은 거야?
B : ㅁㅁ마을 녀석
아무래도 뭔가 있는 집인 것 같아
A : 재밌을 것 같다~!
B : 그렇지? 지금 한번 가보자~!!!!
A형이랑 B형은 신이 나 보였지만 제일 어리고 겁이 많던 C는 주저하고 있었어
B : C는 겁쟁이구나? ㅋㅋㅋ밤에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가는 거 아니야?ㅋㅋㅋㅋ
C : 아니야!!!!
B : ㅋ겁쟁이~C는 겁쟁이래요~겁쟁이래요~
C : 나도 갈 거다 뭐~!!
우리 네 명은 재잘재잘 떠들면서 도로를 따라 고개 쪽으로 걸어갔어
마을에서 걸어서 10분
제재소나 외양간을 벗어나면 산 쪽에 큰 묘지가 있는데
거기서 한 5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니 B가 철조망 길이 오른쪽에 있다는 거야
차를 타고 있었다면 보일리 없는 곳이었어
폭 2미터 정도의 덤불이 줄지어 있고 안쪽을 들여다보면 5미터쯤 앞에 작은 쇠기둥 2개에 허름한 철조망이 처져 길을 막고 있었어
철조망을 넘어가 자갈과 잡초 투성이인 길을 조금 걷다 보니 길은 조금씩 오른쪽으로 굽어가고 있었어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 싸여서 어스름한 커브를 돌아가니 초록색 나무 터널 끝에서 유난히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어
거기서 강이 흐르고 길은 끊겼어
건너편에도 초록색 터널 같은 오솔길이 보였어
건너편까지는 고작 10~15미터 정도
강변에 빼곡하게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웠고 발밑엔 다리의 기둥이었던 걸로 보이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있었어
A : 거봐~ 길 없잖아~!!
B : 아 잠깐만~봐 이거 다리 있던 자국 맞지? 저 건너에도 길이 있잖아
A : 정말이네
B : 이리로 와봐 샛길에 표시를 해 놨대
길을 조금 되돌아와 커브를 돌아가자 B가 길 옆의 아랫부분을 가리키면서
B : 자 봐~이 돌이 샛길로 가는 표시야
사람 머리 크기정도의 납작한 돌이 2개 나란히 놓여 있었어
B의 말로는 옛날에 여기에 지장이 있었다나 봐
길을 따라 무성한 덤불이 늘어선 가운데 확실히 어느 한 군데가 다른 곳에 비해 옅은 라인이 보였어
수풀 속은 부드러운 흙이 질척한 느낌이지만 이 라인을 따라서는 뭔가 다져진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었어
덤불을 헤치면서 나아가자 강이 나왔어
B : 저 보라고 다리야
B가 가리킨 것은 낡은 현수교였어
A : ㅋㅋㅋ뭐야ㅋ다리라는 게 이거였냐? ㅋㅋ건너갈 수 있겠어? 이걸?ㅋㅋㅋ
B : 봐 꽤 튼튼하다니까?
먼저 B가 앞장서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어
끼기기긱~ 삐걱 억 삐걱 끼익
섬뜩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보기보다 튼튼한 것 같았어
C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한꺼번에 구름다리를 건너다가 다리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한 명씩 차례대로 건너편까지 넘어가기로 했어
가장 신이 난 B형이 다 건너가자 그 뒤에 A형
그다음에 내가 건너가고 마지막으로 C를 불렀는데 좀처럼 건너오려고 하질 않는 거야
B : 야! C 뭘 겁내고 있어~!!
괜찮아 우리 다 건너왔으니까 젤 꼬맹이인 네가 건넌다고 다리가 어떻게 되겠냐?
건너편에서 목청이 터져라고 외치며 달래고 어르고 해서 겨우 C도 건너왔어
눈물로 얼굴을 흠뻑 적신 C의 머리를 B형이 쓰다듬으며 마구 헝클어 놓았어
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길을 헤치고 조금 걷다 보니 잡초투성이의 자갈길이 나왔어
아까 떠내려간 다리가 있던 길 건너로 보이던 그 길인 것 같아
이 길을 따라 한 100미터쯤? 꾸불꾸불 커브를 돌아가니 광장 같은 장소가 나오고 거기에 집이 2채 있었어
보아하니 원래는 밖에도 여러 채의 집이 있었던 것 같은 흔적도 있었는데 다 공터가 되어 있는 게
울창한 숲 속에 텅 빈 공간이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었어
2채의 집은 단층건물로 길을 끼고 마주 보고 있었어
둘 다 폐가였는데 왼쪽 집에는 작은 헛간이 딸려 있었어
광장 입구에는 풍화돼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낡은 지장이 있었는데 왜인지 적갈색으로 변해있었어
B형은 엄청나게 신이 나 있었는데 나랑 C는 겁에 질려서 입을 다물고 있었어
C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
양쪽 집 다 현관의 미닫이와 창문을 나무판자를 덧대어 막아놓았더라고
B : 어디 들어갈 데 없을 까?
A형과 B형은 집 주위를 뺑뺑 돌면서 둘러보고 있었어
돌아가자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던지라 C는 조용히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이고만 있었어
집 뒤쪽에서 B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다 함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까 뒷문은 잠겨있을 뿐 나무판자로 고정돼 있진 않더라고
B : 형~같이 당겨보자
A형은 히죽 웃으면서 B형이랑 같이 문 손잡이를 당기기 시작했어
C : 안돼~! 고장 나면 어떡해?
B : 아무도 안 사는데 뭐 어때?
두 사람은 구령에 맞춰 힘껏 문을 당겼어
몇 번인가 힘을 쓰며 하나 둘 ~ 셋!! 하는 순간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확 열렸어
형들은 문이 열리는 반동에 둘 다 땅바닥으로 날아갔어
A형은 가엽게도 왼쪽 팔꿈치가 까졌지 뭐야
문 안쪽으론 꽤 어두웠기 때문에 손전등을 안 가져온 걸 후회했어
우선 B형이 먼저 그리고 A형이 흙투성이인 채로 따라 들어갔어
B : 으악 냄새 ~
A : 윽 곰팡이 냄새!!!
난 정말 겁먹은 얼굴로 C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공포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기에 형들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어
그러자 C도 당황해서 기다려!!! 하면서 바로 따라 들어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부엌이었어
바닥을 개조했는지 상당히 널찍하더라고
곰팡이 냄새가 저는 데다가 걸을 때마다 흙바닥처럼 쌓여있던 먼지가 일어서 흩날렸어
부엌엔 아무것도 없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다다미방이 있었어
부엌과 만나는 부분의 다다미가 심하게 썩어서 새카맣게 변해있었어
그 위의 문턱에는 뭔가를 긁어서 억지로 지워놓은 듯한 흔적이 있었어
방에는 벽에 세워놓은 커다란 거울이 있고 거울 반대편 벽 쪽엔 20여 년 전의 달력이 걸려 있었어
그때당시로도 거의 20여 년을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거겠지?
달력밑에는 폭 1미터, 높이 50센티에 길이가 50센티 정도의 목제로된 궤짝 같은 게 있었는데
덮개 부분은 누렇게 바랜 부적 같은 게 붙어있었어
C : 이제 집에 가자~ 무서워,,,,
B : 아~이 겁쟁이 자식
A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냐?
두 형들은 웃으면서 궤짝을 열려고 했는데 단단히 잠겨 있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
한동안 애를 써봐도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일단 포기하고 다시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어
궤짝이 있던 방에서 좁고 어두운 복도가 이어져 있었는데 퍼내는 재래식 일본 화장실과 좁은 욕실이 나란히 있었어
욕조 안에는 잿빛이 도는 검은 액체가 굳은 것 같이 있어서 엄청 더러웠어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에서 복도 맞은편으로도 방이 하나 있었는데
방안에는 전신이 비치는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거울 반대쪽 벽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어
그 나무 상자에도 아까 본 궤짝처럼 오래된 봉투 같은 게 붙어있었어
A : 엥??!! 이건 또 뭐야?
B : 뭔지 한번 보자
B형이 상자를 열려고 해 봤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어
하는 수 없이 겉에 붙어 있던 봉투를 뜯어서 안에 들어있던 종이를 꺼냈어
B : 이거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A : 뭐지? 알아볼 수가 없네
거기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들이 검게 한 줄로 쓰여 있었고 왼쪽 아랫부분에는 뭔가로 문지른 듯한 검붉은 얼룩이 묻어있었어
B : 아까 거기 붙어 있던 종이도 같은 걸까?
형들이 복도를 따라 다다미방으로 되돌아가고 뒤를 나랑 C도 따라갔어
A : 좀 다르긴 한데 비슷하네
궤짝에 붙어있던 것도 뭔가 달라 보이긴 했지만 비슷했어
한 줄로 적힌 글씨의 왼쪽 아랫부분에 검붉은 얼룩이 있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 집을 둘러보느라 복도를 걸어서 작은 상자가 있던 방을 지나고 곧 현관이 나왔어
C : 으악~!!!!!!!
B : 뭐야 왜 그래?
C : 저기... 사람이....!!!!!!!!!!!!!!!!!!!